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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0년 전, '난민'이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들: 라트비아 가족의 이야기와 오늘날의 현실

트이사 2025. 3. 27. 09:11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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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4년 현재, 전 세계는 난민과 망명 문제를 놓고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.
하지만 ‘난민 보호’라는 개념의 기초는 사실 80년 전,
**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떠돌던 ‘디피(DP, Displaced Persons)’**들로부터 시작됐습니다.
그 중심에는, 호주의 한 라트비아 공동체의 리더인 **야니스 체친스(Janis Cecins)**의 가족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죠.


✈️ 1940년대: 난민제도의 시작, 디피(DP)들의 등장

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, 수많은 유럽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.

  • 소련 점령지로의 강제 송환을 거부한 슬라브계와 발트계 주민
  • 나치와 소련 양측의 탄압을 피해 떠난 시민들
  • 유대인 생존자들과 함께 DP 캠프에서 지낸 다수의 ‘비유대인 난민’

👉 이들은 1945~51년 사이의 국제 난민 제도와 제네바 난민 협약의 기초가 되었고,
👉 전후 질서 속에서 난민이 ‘인도적 보호 대상’으로 정의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.


🇦🇺 호주를 선택한 이유: "러시아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치고 싶어서"

체친스 씨의 부모는 라트비아 리가 출신의 회계사와 기술자였습니다.
소련 열차로 강제 이송 중, 한 경비병이 **“내일 다시 돌아오라”**는 약속만으로 이들을 내려주었습니다.
그날 밤, 그들은 약속을 어기고 탈출해 결국 연합군이 운영하는 DP 캠프에 정착했습니다.

👉 호주, 미국, 캐나다 중 호주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:

러시아에서 가장 먼 곳이었기 때문.”

이러한 사연을 가진 발트계 이민자들은 자신들을 단순한 경제 이민자가 아닌,
**‘전체주의로부터 도망친 정치적 난민’**이라 여기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.


🔄 그러나 오늘날, 난민 보호의 원칙은 흔들리고 있다

2024년 현재, 제네바 난민협약에 명시된
‘박해에 대한 근거 있는 공포’를 가진 자에 대한 보호 의무는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.

  • 🇦🇺 호주: 나우루(Nauru) 섬 등으로 난민을 보내는 ‘오프쇼어 처리(offshore processing)’ 제도 운영
  • 🇬🇧 영국: 르완다에 난민 이송 추진
  • 🇺🇸 미국: 멕시코 국경에서의 추방 강화
  • 🇫🇷 프랑스, 🇩🇪 독일 등도 ‘보호받을 자격이 있는 난민’을 선별하려는 경향 강화

특히, 호주는 최근 가자 지구 출신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비자를 발급하자
“하마스에 세뇌된 이들이 들어올 수 있다”는 우려가 정치권에서 터져 나왔습니다.


📚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: 난민에겐 '이야기'가 필요하다

**쉘라 피츠패트릭(Sheila Fitzpatrick)**의 저서 『Lost Souls』는
냉전 초기, 발트인과 슬라브계 난민들이 ‘반공주의 희생자’라는 서사를 통해
미국과 호주의 환영을 받았던 역사를 조명합니다.

  • 미국: 난민을 소련 체제에 대한 ‘선전 승리’로 활용
  • 영국: “서쪽으로!” 프로그램 통해 발트·우크라이나인 7만7천 명 이주
  • 호주: “땀 흘릴 준비된 농민, 건설 노동자만 원한다” → 지식인들도 노동자로 가장해 입국

👉 정리하자면,

좋은 이야기와 이미지’는 난민 수용 여부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.


💬 결론: 난민 담론, 감정과 현실 사이에서 다시 이야기되어야 한다

오늘날 반이민 정서가 강해지고 있지만, 역사는 보여줍니다.

  • 국가가 난민을 받아들였던 시기에는 항상 ‘감정적 공감’과 ‘경제적 실용성’이 함께 존재했으며,
  • 보편적 인권 논리만으로는 사회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현실도 존재합니다.

✅ 따라서 난민 보호를 주장하는 이들이 단지 원칙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,
✅ 설득력 있는 인간적인 이야기와 국가적 이득을 병행한 서사 전략이 필요합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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